copy. 네이버 영화
역시 나이를 먹었나 보다.
첫사랑의 추억과 낭만을 담은 영화 <너의 결혼식>을 내가 20대, 아니 조금만 더 양보하여 30대 초반에 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사랑을 주제로 한 멜로 드라마인데도 이제 불혹을 넘긴 내 심장은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지만 이 영화는 박보영과 김영광이라는 두 배우를 통해 밝고 청초름한 빛깔을 내는 괜찮은 영화라 평하고 싶다. 두 배우 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를 지니고 있었고, 사춘기 10대 시절과, 20대 대학생 시절을 카메라에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해 낼 수 있다는 데 두 주인공의 캐스팅이 빛을 발하는 거 같다.
필자 개인적으로 10대 사춘기 시절을 되돌아 보면 그다지 그때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 많아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감정들을 좀더 정화시키거나 아름답게, 또는 선하게 아니 그보다는 의미 있게 교정해 보려고 평소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 작업이 여전히 쉽지는 않다. 보통의 우리들은 대부분 그 시절의 성장통을 겪으며 그렇게 어른이 된다.
영화에서 여주인공 승희(박보영 분)의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이 잠시 등장한다. 전라도에서 멀리 강원도 강릉까지 고3에 전학을 한 승희. 학교에서는 예쁜 외모로 뭇 남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고, 공부도 꽤나 잘하고 명랑한 소녀로만 비추어졌으나 그녀가 멀리까지 전학 온 이유가 있었다.
알코올중독자로 보이는 아버지, 그리고 그의 가정폭력을 견디며 승희는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새초롬하게만 보이는 아이였으나 그 내면에는 아픔으로 인한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들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승희는 아픈 가정환경보다 내면이 강한 아이였고, 우현(김영광 분)에게 사랑의 공간을 내어줄 만한 마음 착한 아이였다. 이후 승희가 어른으로 성장하고 나서 승희의 가정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에 대해 영화는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지는 않지만 이후 승희는 무난하게 대학생이 되었고, 사회인으로 자리잡아 나갔다.
필자가 생각하기로 승희가 어려운 10대 시절을 방황하지 않고 건강하게 지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현과의 사랑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눈으로 볼 때는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처럼 비춰지거나, 공부하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짓 정도로 보일 수 있겠지만 승희와 우현이 나눈 교감은 동화처럼 순수했고 풋 사과처럼 달콤했다.
영화를 보며 나의 10대 시절이 상기되었다. 술을 자주 드시고 너무도 자주 집안 분위기를 황폐하게 흐트러뜨리셨던 아버지. 승희네 미용실의 깨진 창문 너머 나의 10대 시절 우리 집의 조그만 전방 문이 아버지로 인해 깨어졌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당시 나는 어딘가에 움츠려 있었고 어디로 빠져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그 당시 나에게 구원자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감히 일탈을 꿈꾸지도 못 했던 내성적인 10대 시절을 보내던 나에게도 우현처럼 첫사랑이란 게 찾아 왔다.
빠르다고 할 수는 없는 고 3때였다. 영화의 우현과 승희처럼 귀엽고 달달한 사랑을 나누지는 못 했지만 혼자 짝사랑하며 가슴 뛰어 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영화에서 우현이 대학교에 입학한 승희를 보고서 오기로 같은 대학에 들어간 것처럼 나 역시 첫사랑을 따라 같은 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당시 고3 수능을 마치고 학교에서 나눠진 각 대학 입학자 명단에서 첫사랑 그 아이를 발견하고서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풋풋한 10대의 사랑, 그것도 짝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의 힘은 실로 컸다.
나에게 그랬고, 우현이에게도 그런 것처럼 누군가의 인생방향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강력한 힘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copy. 네이버 영화
그런데…….
영화는 이렇게 풋풋한 10대와 20대의 열병 같은 사랑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자기가 원하고 좋아했던 전공도 뒷전으로 버리고 돈을 벌기 위해 험한 세상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두 주인공. 첫사랑은 당시 너무도 뜨거운 것이었지만 그 열감은 세파에 물들어 가며 차츰차츰 식어간다는 걸 이 영화 역시 잔잔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식어진 첫사랑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 역시 아직 잊혀지지 않은 첫사랑의 강렬한 무엇인가였다. 이처럼 영화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라도 사랑하는 이를 건지고 싶은 것이 사랑의 본능이란 것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앞에 때론 흔들리기도 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사랑의 실상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첫사랑은 풋풋함과 강렬함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 앞에서 때론 지키지 못한 아쉬움의 대상이 되곤 하는 것이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외치며 마지막, 승희의 결혼식장에 깜짝 등장하여 무언가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던 우현이었지만 영화는 더 이상의 반전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첫사랑의 애잔한 감성과 애틋함을 남기며 영화는 끝이 났다.
영화 <너의 결혼식>을 보며 서두에 “이제 내가 나이를 먹은 거 같다”는 말을 했다. 정말이다. 분명 이 영화를 10대나 20대에 봤더라면 두 주인공의 사랑에 몰입되어 ‘나 역시 저런 사랑 한번 해보고 싶다’는 설레는 반응을 보였겠지만, 30대에 봤더라면 ‘역시 첫사랑은 이뤄지는 게 아니야, 세상을 결코 녹록치 않아’ 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불혹을 넘긴 지금의 나는 좀더 관망하는 자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지난 시절을 추억하며 함께 웃고, 때론 삼촌 미소도 날리며 잔잔하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내가 하나 깨닫고, 얻어 낸 것은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남녀간의 사랑의 힘이 무척 강력하다’는 것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사랑은 때론 누군가의 인생행로를 순식간에 뒤바꾸어 놓기도 하고,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달래주는 강력한 진통제가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 한 번 해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이 영화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첫사랑의 위력을 체험해 보고 싶은 10대, 20대 그리고 현실의 각박함 속에서 잠시 첫사랑 그때를 추억하고 싶은 30대, 40대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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