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 덕분에 과거에 보지 못한 영화들, 몰아보고 있다.
오늘은 제목부터 독특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벚꽃은 말이야, 꽃이 진 척만 하는 거지 계속 피어있대. 다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싹을 품고 잠들어 있지. 벚꽃은 진 것이 아니야, 모두를 놀라게 하려고 숨어있을 뿐. 그리고 따뜻한 계절이 오면 단숨에 확 꽃을 피우지. "서프라이즈!" 하면서.
일본 영화 특유의 섬세함과 서정성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보편적인 소재를 독특한 감수성으로 풀어내며 한순간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무엇인가를 건드리는 그런 영화.
사랑에 대한 기억들이 우리가 느끼고 눈으로 확인한 것들로만 한정한다면 상대방의 진심을 우리가 다 알기란 힘들다. 하지만 다 표현하지 못했고, 혼자서만 비밀처럼 간직했던 상대방의 진심에 대해 내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도 내가 무수히도 오해했던 일들과 그(녀)의 진심을 다 헤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이 일순간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나를 그렇게도 사랑해 준 상대방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고마움이 느껴지고, 더 많이 사랑해 주지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자책도 느껴질 것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남자 주인공 하루키는 책 읽는 데만 집중하며 주위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이 학생이었다. 사람을 보는 그의 시각은 지극히 제한적이었고 그런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을 것이다. 이성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자신을 순간순간 관심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가 있었다. 바로 여주인공 사쿠라였다. 이 장면이 참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주위에 마음문을 닫은 채 그렇게 홀로 살아가고 있는 그 순간에 누군가는 그런 자신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다. 순간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무관심하게 여주인공 주변에 머물렀던 남자아이,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실은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여주인공의 마음은 또 얼마나 뭉클했을까...
내게 있어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는 것,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좋아하게 되고 싫어하게 되고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손을 잡고 안아주고 엇갈리고... 그게 산다는 거야. 자기 혼자선 살아있는지 알 수 없어. 그래. 좋은데 싫어. 즐거운데 뭔가 찜찜해. 그런 답답함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거라 생각해.
우리가 어른이 되고 나이가 한두살 더 먹어갈수록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을 경험하지만 순간순간 흘려보낼 뿐 그것들을 순수하게 간직하지만은 못하는 거 같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그때만큼 우리의 감정이 강렬한 때는 없는 거 같다. 아직 때묻지 않은 깨끗한 도화지 같은 마음에 새겨졌던 그 수많았던 애틋한 감정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역시 그때의 순수했던 감정들을 떠오르게 해주고 어른이 되어 때묻어 있는 나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정화시켜 주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이 먹어서도 평생토록 그러한 감정들을 지켜가기란 결코 쉽지 않지만 아직도 소설을 통해, 영화를 통해 그러한 깨끗하고 섬세한 감수성들을 소환시키고 애틋한 사랑의 기억들을 전해준다는 것은 독자와 관객 입장에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다.
순수하고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들 역시 우리 몸 세포 곳곳에 깊이 저장되어 있기에, 어느 한날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세포들을 일깨워 줄 나만의 사쿠라를 만난다면 그 마음 찬란하게 다시금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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